뉴트민호
러너의 아침은 엄숙하고 고요했다. 뉴트는 나무에 기대어 미로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민호를 바라보았다. 꽤 오래 전, 뉴트 역시 저 안에 있었다. 그건 서로 그리버에게 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 탈출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하는 얼마간 진행되는 기도 속에 뉴트도 손을 모았던 적이 있었단 뜻이기도 했다. ‘헤이, 뉴트.’ 준비를 다 끝낸 민호가 뉴트에게 다가왔다. 탄탄한 가슴팍과 적당히 자리 잡은 근육들은 그가 치프 러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마, 글레이드 안에서 민호만큼 몸이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뉴트가 다가오는 민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어때, 오늘은 괜찮을 거 같아?”
“가봐야 알지.”
“신참과는 처음 들어가는 거지?”
“아마.”
“잘 다녀와. 가다가 넘어지지 말고.”
“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너 같다는 착각을 버리는 게 좋겠어.”
낄낄거리는 민호의 어깨를 가볍게 매만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3년이었다. ‘신참! 이제 들어가자!’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뉴트의 머리를 헤집는 손은 빠르고 경쾌했다. 뉴트는 절뚝이는 다리로 미로 입구를 향해 걸었다. 어느새 민호는 토마스와 함께 미로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다른 글레이더들은 바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뉴트는 이미 사라진 민호의 발걸음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귀에 쏟았다. 타닥, 타닥. 거의 다 낡아빠진 신발이 내는 소음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얼기설기 얽힌 덩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은 민호가 뛰어다닐 미로 안으로 가득했다. 미로라면 뉴트 역시 훤히 알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면 막다른 길인지, 언제 어떤 번호가 열리는지. 그래서 더 불안하고 초조했다. ‘뉴트! 이것 좀 도와줘!’ 척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뉴트가 낮은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러너들이 미로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남겨진 글레이더들은 러너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마음만은 함께 한다는, 그 말은 완벽한 궤변이었다. 뉴트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걷기 시작했다. 우스웠다. 이제 와서 이런다는 것 자체가.
*
러너들이 돌아왔다. 토마스는 생각보다 잘 적응한 듯, 복잡한 미로속이 나름 괜찮았다며 농담을 던졌다. ‘흥. 그래봤자 신참이야.’ 갤리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글레이더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뉴트는 고생했다는 의미로 토마스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그건 뉴트가 나름 토마스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돌아온 러너들의 마중을 끝낸 글레이더들은 신속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신참이 들어왔다고 해도 글레이드 안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다. ‘신참은 어때?’ 모두가 자리로 돌아간 뒤, 뉴트는 홀로 입구 앞에 서 있는 민호를 향해 물었다. 민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쓸 만해. 빠르고.”
“그것 뿐?”
“그거 말고 뭐가 더 필요하지?”
“그래, 맞아. 필요한 건 없지.”
이제 곧 저녁시간이었다. 미로의 입구는 문이 닫힐 것이고, 글레이더들은 오늘도 무사히 끝난 하루에 안도를 할 터였다. 뉴트가 절뚝거리며 숲 쪽으로 향했다.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그 뒤를 민호가 따랐다. 오랜 글레이드 생활로 거칠어진 손이 마구잡이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사실을, 민호는 언제나 쉽게 알아차렸다. 엇문 입새로 흐르는 한숨이 숲속 안을 조용히 울렸다. 언제 있었는지 모르는, 자신이 이곳에 올라왔을 때부터 자리했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얼굴 위로 그늘이 졌다. 고개를 들면 민호의 얼굴이 보였다. 빛에 반사 되어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너 오늘 왜 그래?”
“그러게. 왜 그러지.”
“이런 한심함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네.”
“많이?”
“아니, 좀.”
“많이는 아니라니 다행이네.”
자신의 밑바닥까지 다 본 유일한 글레이더였다. 민호가 뉴트의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 쉣. 축축해.’ 인상을 찌푸리는 게 꼭 찌그러진 감자 같아서 웃음이 났다. ‘왜 웃어? 실성이라도 한 거야?’ 차라리 실성이라도 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보다 미쳐버리는 게 편한 이곳 생활이었다. 익숙해졌기에 이 생활에 적응을 한 것뿐이었다. 도망칠 수 있다면 언제든 도망치고 싶었다. 그게 글레이드 안에서의 생활이었고, 뉴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곳에 있는 모든 글레이더들의 마음이었다.
처음 이곳에 올라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글레이더는 민호였다. 바짝 올려 세운 머리와 팔뚝까지 올린 셔츠가 인상적이었던. 그 때도 지금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아직 치프 러너라는 칭호가 민호의 앞에 달리지 않았던 시절. 뉴트는 민호와 함께 미로 안을 탐색했다. 매일 같이 미로 안을 뛰어다니며 출구를 찾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썼다. 하지만 그런 뉴트에게 돌아온 것은 절뚝이는 다리와 산산조각 난 희망이었다. 그 사이 민호의 이름 앞에는 치프 러너란 칭호가 붙었고, 자신은 부대장이 되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냐?’ 민호가 뉴트의 발목을 매만지며 물었다. 투박한 손의 생김새와는 다르게 어루만지는 손은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뉴트가 웃었다.
“고민은 무슨.”
“있는 거 같은데.”
“민호.”
“왜.”
“나는 가끔 꿈을 꿔.”
눈을 떴을 때 온 몸을 감싸 안는 따뜻한 이불의 촉감과 눈이 부실 정도로 쏟아지는 햇빛. 여기저기 진흙이 묻은 더러운 옷이 아닌 깨끗하고 정갈한 옷. 방에서 나오면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귓가에는 부드럽고 상냥한 엄마의 목소리. 하지만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세상은 글레이드였다. 이젠 지워지지도 않는 옷의 얼룩과 흔들리는 해먹, 미로들이 움직이는 소리. 상실감과 허망함에 입술을 깨무는 시간들. 뉴트가 조심스레 민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거기엔 네가 없더라.”
“꿈에서도 넌 날 보고 싶어?”
“아니, 그래서 행복했다고.”
“어, 그건 좀 실망인데.”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농담과 농담이 섞인 대화는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뉴트가 눈을 감았다. 민호가 나오지 않는 꿈은 단조롭고 행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민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꿈에서 깼다. 그리고 해먹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는 민호를 본 뒤에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안도인지, 아니면 실망인지 알 수 없었다. 뉴트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네가 없는 꿈은 즐겁고 신나는 일들뿐이야, 민호. 그곳엔 갤리도, 알비도, 새로 온 신참도 없어. ‘그거 말곤?’ 생각의 틈새로 민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정말 그게 네 고민이야?”
“민호.”
“3년이야, 뉴트.”
“…….”
“단지 내 착각이라면 사과하겠지만…….”
글레이드에서 3년은 굉장히 길고 오랜 시간이었다. 그 사이 죽어간 글레이더의 이름은 이미 기억 속 희미해진 흔적이 되었다.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민호가 웃었다. 키득거리는 소리가 어깨를 타고 전해졌다. 그래, 꿈은 단순히 뉴트를 절망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만 갈망하게 만들었다. 뉴트의 손이 민호의 팔목을 그러쥐었다. 햇빛으로 탄 손은 탄탄했고 새까맸다. 살보단 근육이 더 많을 것 같은 손목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냈다. ‘장난이야?’ 민호의 목소리에 뉴트의 고개가 힘없이 좌우로 움직였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미로를 사이사이 지나가도 끝을 맺지 못할 것 같은 생각들이었다. 처음엔 행복했고, 그 후에는 민호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 민호를 확인한 뒤 한숨을 내쉬면 다시 하루가 반복됐다. 거기까지만 해도 그래, 가벼운 해프닝일 뿐이라고. 탈출하고 싶어 안달이 난 자신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나 착각 같은 거라고. 문제가 있다면 민호가 미로 안으로 들어간 그 직후였다. ‘미로는 어때?’ 뉴트가 물었다. 민호는 말을 돌리는 거냐며 어이없어 했고, 뉴트는 그저 민호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똑같지. 그리버를 피해 미로 안을 뛰어다니고, 미로 입구가 닫히기 전에 다시 글레이드 안으로 돌아오는 거.”
“그래, 내가 3년 전에 했던 것처럼?”
“맞아. 네가 했던 것처럼.”
함께 미로 속을 뛰어다닐 땐 느끼지 못했다. 언제나 함께였다. 글레이드 안에서는 눈을 돌리면 언제나 민호가 보였고, 미로 안에서는 시야가 아니더라도 발소리로 민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뉴트가 그 꿈을 꾸기 시작한 건 더 이상 미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부터였다. 고장나버린 발목에 더 이상 미로 안을 뛰지 못하게 되었을 때. 민호가 자신이 아닌 다른 러너들과 함께 미로 속으로 들어가게 된 그 때.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슬그머니 내려와 민호의 손을 맞잡았다. 여기저기 긁히고 패인 상처는 그가 러너임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민호.”
“말해. 고민이 있다면 들어줄 테니까.”
“그거 고맙네.”
“알비한테도 말 못할 고민인 거, 맞지?”
“맞아. 그런 고민.”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땀으로 절어 있는 손에선 조금 짠 맛이 났다. 간지럽다며 민호가 툭, 하고 어깨로 뉴트의 머리를 흔들었다. ‘징그럽게 이게 무슨 짓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피하거나 밀쳐내진 않았다. 뉴트의 입술이 민호의 손등을 지나 손목을 지났다. 쪽, 쪽, 쪽. 가볍고 경쾌한 소리는 민호의 어깨쯤에서 멈췄다. 쌍꺼풀이 없는 눈은 눈두덩에 파묻혀 작게만 보였다. ‘너 참 눈 작아.’ 뉴트의 말에 민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동그랗게 보이던 눈동자가 금세 뉴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설마 그게 고민인 건 아니겠지?”
“민호.”
“왜. 인마.”
“매일이 지옥이야.”
“…….”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워.”
미로 안에서 들리지도 않을 네 목소리를 찾고, 보이지 않을 네 발자국을 상상해. 몇 번이나, 또 몇 번이나.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꿈속에서처럼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이라면 나는 너를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곳은 글레이드 안이고, 너는 내 앞에 있는데. 민호. 나는 네가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어. 그러면서도 내 머릿속은 자꾸만 네가 없는 나를 만들어 내. 제발 살아 돌아오게만 해달라고. 네가 무사하길 빈다고. 신에게 기도를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 우리를 글레이드 안으로 내몬 좆같은 신이 나의 기도를 들어줄 리 없잖아?
“뉴트.”
“너를 잃을까 무서워, 민호.”
“…….”
“네가 없어질까 봐 무섭다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심이었다. 나약해지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여기까지 왔다. 들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뉴트가 고개를 들어 민호를 바라보았다. 마주한 눈빛은 단단하고 곧았다. ‘미로가 두려워.’ 너를 집어 삼켜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만약 그리버에게 네가 찔린다면, 그래서 흉측한 모습으로 죽어간다면. 허공을 떠돌던 손이 민호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민호의 피부와 대비 된 아주 하얀 손이었다.
“그거 참 병신 같은 생각이네.”
“알아, 나도.”
“듣다보면 내가 죽길 바라는 거 같을 정도야.”
“……그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잡히지 않은 손이 뉴트의 손등을 뒤덮었다. 따뜻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따뜻한 체온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워.’ 퉁명스럽지만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단호하게 떨어지는 그 말에 뉴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밑으로 끌어내려진 손이 단단하게 얽혀 들어갔다. 뉴트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민호의 손가락이 다부졌다. 괜히 치프 러너라는 칭호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민호는 글레이더들을 통솔하는 리더십이 있었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멘탈이 있었다. 그건 뉴트가 좋아하는 민호의 일면이기도 했다.
“나는 여기 있어, 뉴트.”
“…….”
“이렇게 살아 있다고.”
“…….”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 있을 거야.”
“민호.”
“너와 함께.”
너와 함께. 민호가 했던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그런다고 마음속 깊숙이 새겨진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뉴트는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했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그 멍청이 같은 얼굴도 좀 치워주고.’ 툭, 하고 자신의 이마를 뉴트의 이마에 가져다대는 목소리가 가벼웠다.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였고, 서로의 온기가 서로를 통해 흐르고 있었다. 뉴트가 잡힌 손을 빼내 민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시큰한 땀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돌아온 자의 흔적이었다. 살아서 돌아온 자의 징표.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여기저기 짧은 입맞춤을 했다.
“민호. 나랑 약속 해.”
“네가 지금 내 곁에서 떨어진다면 생각해볼게.”
“민호.”
“……그래, 말해. 무슨 약속인데?”
“나와 함께 살아.”
“그거 내가 아까 말한 거 아냐?”
“맞아. 나와 함께 사는 거야. 나와 함께.”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목을 끌어안는 민호의 체온이었다. 뉴트가 끌어안은 손에 더욱 더 힘을 주었다. 파묻은 얼굴 사이로 조그만 웃음이 일었다. 나와 함께. 더 이상 꿈에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돌아올 민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마음만은 함께한다는 그 궤변을 진실로 만들어버리면 된다고. 마지막으로 뉴트의 입술이 닿은 곳은 민호의 입술이었다. 꾹 다물려 있던 입을 정성스럽게 핥았다. 마치 열어달라고 노크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신호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이 얼마 후, 민호의 입은 무너진 성문처럼 쉽게 열렸다.
*
뉴트는 닫히는 미로의 문 앞에서 민호를 잃었다.